[캠퍼스엔 = 손혁진 기자] '14세가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형법 제 9조)
훔친 차로 무면허 운전을 하다 인명사고를 낸 무서운 10대들을 처벌하지 않는 근거는 고작 이 한 문장이었다.
지난 달 29일, 학교에 가기 전 용돈을 벌기 위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20세 청년 A씨는 중앙선을 넘어 달려오는 차량에 충돌해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고를 낸 운전자와 동승자들은 도로에 쓰러져있는 A씨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계속 달렸고, 사고 현장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차량을 버려두고 도주했다.
이렇게 끔찍한 사고를 낸 사람들은 놀랍게도 모두 10대 청소년들이었다. 이들은 서울에서 차량을 훔쳐 대전까지 운전하다 경찰에게 적발되었고, 경찰을 피해 달아나는 과정에서 1차로 택시와의 접촉사고를 일으킨 다음 A씨의 오토바이와 충돌했다. 사고를 낸 일행 8명 중 6명은 현장에서 경찰에게 붙잡혔고 나머지 2명은 서울에서 검거되었다.
갑작스레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된 A씨의 가족들과 지인들을 더 황당하고 비참하게 만든 것은 이들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할 수 없는 '촉법소년'이라는 점이었다. 경찰은 현행법에 따라 운전자만 보호시설로 인계하고 동승자들은 가족들에게 돌려보낼 수 밖에 없었다.
과연 촉법소년제도가 무엇이길래 이처럼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일까? 촉법소년이란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로서 형법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 자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촉법소년은 형사책임능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대부분 보호처분을 받게 된다. 즉, 아무리 질이 나쁜 범죄에 연루되도 실형이나 벌금형 같은 실질적인 처벌을 받지 않고 보호관찰이나 소년원 입소 같은 교화를 위한 시스템의 적용을 받는다.
물론 반사회성이 있는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청소년들이 성장과정에서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포용적인 태도를 보여줄 필요성도 있다. 하지만 죄질이 악하고 재범률이 높은 강력범죄만큼은 예외를 두어야 한다.
경찰청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소년부에 송치된 촉법소년 중 70~80%는 4대 강력범죄(절도, 살인, 강도, 폭력)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 등의 흉악범죄로 검거되는 소년범들이 매년 3000여명 정도 된다는 대검찰청의 통계도 있다. 이는 소년범죄가 더 이상 개인의 작은 일탈 수준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청소년들의 범죄는 재범률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의 보호관찰대상 청소년들이 1년 이내에 다시 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90%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는 성인보호관찰대상자들의 재범률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인데 촉법소년제도의 본래 목적과는 많이 상반되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소년법을 폐지하자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실제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법안을 수정하거나 폐지하는 절차가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청소년범죄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불타올랐던 여론이 금방 잠잠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년법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지만 강력범죄와 재범에 한해 예외적 규정을 두는 것은 꼭 필요하다. 또한 만 14세는 자신의 행동에 충분한 책임을 지는 법을 배워야 하는 나이인 만큼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추는 일도 시급하다.

이번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8명의 10대들을 엄중히 처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기사가 작성되고 있는 시점을 기준으로 65만명의 국민이 동의의 뜻을 표시했다. 끝없이 반복되는 청소년들의 잔인한 범죄행위에 피로감을 느끼고 분노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도 그저 잠깐 이슈화 되었다가 다시 잠잠해진다면 이와 유사한 일들은 앞으로 몇 번이고 반복될 것이다. 소년법과 촉법소년제도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시점이다. 잘못을 한없이 용서해주기만 한다면 변화는 절대 찾아오지 않는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