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창작을 위해 모이는 사람들이 있다. 창작을 한다는 것은 머리와 마음에 정처 없이 떠다니는 무형의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유형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표현하는 과정은 소위 말해 '빡세다'.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순간은 정말 찰나일 뿐이라서 빛나는 아이디어를 붙잡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하고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하나의 결과물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잘 알아주지도 않는다. 창작은 그래서 어렵다. 그러나 이 어려운 일을 결국은 해내주는 누군가들 덕분에 우리는 평소 사유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사유해보고,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한다. 그 누군가들을 우리는 '창작집단'이라고 부른다.
2020년 10월 29일 목요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창작집단 '표착 인류'로 활동하고 있는 최예림 학생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리 모두는 정처 없이 떠돌며 살아가지만 결국은 어느 지점에서 맞닿게 되어있고, 그 지점을 찾아가는 여정이 결국은 창작을 하게 되는 이유라고 믿는다는 최예림 학생과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1. 안녕하세요. 본인 소개 간단하게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예술대학교 광고 창작전공 최예림입니다. 현재는 휴학 중이고, 전시기획팀에서 일하며 관련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은 창작집단 '표착 인류'의 구성원으로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2. '표착 인류'라는 이름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요.
직관적인 단어가 아니라서 추상적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냥 쉽게 말하면 '표착'이라는 단어와 '인류'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표착'의 사전적인 정의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일정한 곳에 정착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사실 모든 인류가 이렇게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일정한 곳에 정착하면서 맞닿게 된다고 생각해서 이런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3. '표착 인류'는 어떤 창작집단인지 소개해 주세요.
저희는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인데 이전에는 큰 의미가 없었던 대상에 새로운 시선을 주고 의미를 붙여주면서 또 하나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을 추구하는 집단입니다. 의미가 통하는 여러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만나고 교류하면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4. '표착 인류'가 그동안 해온 프로젝트에 대해 들려주세요.
처음으로 소개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독립출판물 출간'입니다. '각자의 섬'이라는 사이트에 모인 글들을 모아 하나의 종이책으로 엮었어요. 텀블벅도 진행을 했는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덕분에 무사히 출간을 하게 되었습니다. (웃음) 이렇게 출간한 책을 각 지역의 여러 독립서점에 입고했고, 지난여름엔 세운 상가에서 플리마켓도 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경남예술진흥원에서 주최하는 'About me, 너와 나의 고민 이야기'라는 행사에 멘토로 참여하였습니다. 이 행사는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눠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는데 저희는 '과거'팀이었어요. 과거와 관련된 여러 질문에 답을 하며 하나의 클립 북으로 만드는 활동을 했습니다. 현재는 11월에 서울에서 열릴 전시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5. 저는 플리마켓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다 보니 플리마켓을 운영하면서 있었던 일들이 궁금해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저희의 이름을 엄청 크게 뽑은 현수막을 거는데 기분이 이상했어요. 단지 '책을 판매한다는 것'에만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찾아주시는 분들을 직접 대면해서 '표착 인류'라는 창작집단을 소개할 수 있는 자리여서 굉장히 벅찬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굿즈도 정말 열심히 만들었는데 물론 저희 눈에는 충분히 예쁘지만 다른 분들이 보시기에도 예쁘게 보인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어요. 마켓에 찾아오셔서 따뜻한 관심과 눈길을 주시던 한 분 한 분 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 날, 플리마켓을 저와 민정이라는 친구 둘이서 운영했는데 플리마켓 시작 직전에 '다 끝나고 우리 뭐 먹지'라는 소소한 고민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마켓이 끝날 때 즈음에는 저희를 응원하기 위해 찾아와준 많은 분들과 다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게 됐어요. 순간, 이 날 마켓의 시작과 끝이 창작집단 '표착 인류'를 처음 기획하고 시작해나갔던 순간을 떠오르게 했어요. 창작집단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불확실하고 막연한 것들이 참 많았는데 창작집단을 시작한 지 1년 정도가 지난 지금, 우리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주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참 감동적인 하루였습니다.
6. 플리마켓을 운영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그날 날씨가 너무 더웠는데 야외에서 진행을 했어요.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장시간 더위를 견디다 보니 체력적으로는 좀 지쳤어요. 하지만 그날 플리마켓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여러 마음들을 생각하면 더위의 문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7. 현재 준비하고 있는 전시는 어떤 전시인가요?
'유영하는 몸짓'이라는 이름의 '관객 참여형 전시'입니다. 표착 인류라는 이름이 갖은 의미를 생각해볼 때 '의식의 흐름'을 소재로 관객 참여형 전시를 진행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각자의 의식은 저마다의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그런 의식들도 결국은 하나로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담은 전시입니다. 마련되어 있는 종이에 쓰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쓰고, 그것을 벽에 붙이면 하나의 텍스트로 표현된 이야기들이 연결되는 거죠. 서로 다른 듯한 이야기들이 한데 모이면 어떤 이야기로 완성이 될지 궁금합니다.
8. 언젠가 저도 비슷한 아이디어를 실현해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반갑기도 하고 궁금하네요. 어디로 가면 볼 수 있나요?
2020년 11월 11일부터 11월 18일까지는 관객 참여형 전시로 진행이 됩니다. 그리고 19일부터 21일까지는 관객 참여를 통해 만들어진 이야기들을 볼 수 있는 일반 전시로 진행이 됩니다. 서울시 성북구에 있는 '불나방'이라는 작은 전시공간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9. 창작집단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과 좋은 점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먼저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이 질문은 다른 질문에 비해서 바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인 것 같아요. 아이디어는 정말 많은데 실현하기까지가 매번 너무 어려워요. 아직 풀지 못한 숙제인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이것은 창작집단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실현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누구나 겪는 고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전공인 '광고'만 해도 아주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결국 선택되는 아이디어는 하나이니까요.
10. 그렇다면 좋았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안도감.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이야기와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이 참 많은 원동력이 됩니다.
11. 요즘 가장 관심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지금 당장은 막연하더라도 앞으로 '표착 인류'를 통해 도전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요?
요즘은 '지역'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지역마다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색들이 너무 다채롭잖아요. 그래서 정말 막연하지만 지역마다의 색을 담을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 싶은 꿈이 있어요.
12. 창작집단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용기를 갖는 것, 그리고 시작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음을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반은 온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게 과연 될까?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지지 말고 일단 작은 시도들을 하나하나 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시도들이 모이고 모여서 과거의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있는 시도를 해나가고 있을 거예요!
13. 마지막 질문이네요. 최예림이 표착 인류를 통해 맞닿았던 것들과 앞으로 맞닿고 싶은 것들은 무엇인가요?
'사람'입니다. 결국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