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캠퍼스엔/안성희 기자] 지난 해 11월 ‘도서정가제의 폐지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 글의 동의수가 20만 명을 넘겼다. 도서정가제(圖書定價制)란 책값의 과열 인하 경쟁에 따른 학술, 문예 분야의 고급서적 출간이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서점들이 출판사가 정한 도서의 가격대로 팔도록 정부가 강제하는 제도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2003년 2월부터 시행되었고 2004년 11월부터는 모든 도서를 종류에 관계없이 정가의 10%까지만 할인이 가능하도록 개정되었으며, 간접 할인을 5%까지, 최대 15% 할인으로 제한을 두고 있다.
10여 년 전에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는 도서정가제에 갑작스런 국민적 관심이 모인 가장 큰 이유는 ‘완전도서정가제’로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도서정가제 규제를 더욱 강화하자는 내용이다. 신용카드사의 할인, 오픈마켓의 할인 등을 모두 금하기로 하며 지적돼 온 거의 모든 편법할인을 막으려 한다. 또한 현재 출판 유통에서 문제로 꼽히는 기업형 중고서점에 대한 규제를 도서정가제에 포함시켜, 1년 이내 신간은 유통시킬 수 없다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또한 전자책(e-book, 웹소설, 웹툰 등) 소비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웹툰, 웹소설의 경우 각 화마다 ISBN 코드를 부여하여 지금까지 무료로 제공되었던 전자책이 유료화 될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이에 대해 완전도서정가제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에서 발표한 국내 단행본 출판사 최상위권 69개사의 2018년 총매출액이 전년보다 0.9% 증가했다고 하지만 전체 영업이익은 7.4% 감소했다. 5곳 중 2곳 꼴로 매출이 줄었고, 5곳 중 1곳은 영업적자였다. 출판계 상위에 속하는 출판사들의 성적표가 이정도니 나머지 출판사들의 사정은 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쉽게 짐작 가능하다. 온라인 서점에서는 10% 가격 할인과 마일리지 제공을 당연한 것인 듯이 제공하고, 각종 카드 할인을 추가로 허용하는 등의 정가제 본래 의미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이는 대형서점 수준의 할인혜택을 부여할 수 없는 지역 중소서점의 존속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허울뿐인 제도이며, 공정한 콘텐츠 생태계 조성을 위해 완전도서정가제는 필수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 찬성 측 의견이다.
하지만 출판업계의 부흥을 위해 도입된 도서정가제는 사실 상 최상위권에 속하는 출판사들의 이익만 증대시키는 꼴이 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도입 초기에 제시된 기대효과는 신진작가의 기회 확대, 도서가격 인하로 인한 시장 확대, 중소출판사 경영개선, 지역 서점 수익 증대 등이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경과를 보면 상위 20% 이내의 대형출판사와 12%정도의 온, 오프라인 서점이 실질적인 이득을 봤다는 것이다. ‘완전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생태계 준비모임’의 회장은 도서정가제 도입 후 단행본 시장은 17% 위축되었고 가구당 월평균 도서비 지출은 약 44% 정도 감소됐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베스트셀러, 유명작가 위주의 출판을 통한 고가격 유지와 신인작가 및 도전적 출판의 위축으로 시장의 독점성이 강화된 것이 원인으로 꼽았다. 공정한 콘텐츠 생태계를 위한 도서정가제가 오히려 생태계를 망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본래의 도입 의도와는 다르게 일부 출판사들의 이익만 증대시키고, 중소 출판사 및 서점은 여전히 도태되고 있다. 또한 완전도서정가제의 도입으로 인한 도서의 가격 인상은 독자들의 소비 회피로 이어질 수 있고 출판업계의 위험을 불러와, 신인작가를 발굴함으로 다양한 영역의 도서 출판을 이루고자 한 목표가 무너지고 결국엔 안정적인 기존 유명 작가들의 독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 상황에서의 완전도서정가제 도입은 본 기대효과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