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번 먹자.”
고마운 일이 있을 때면 “내가 밥 한 번 거하게 살게!”, 아프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땐 “그래도 밥은 꼭 챙겨 먹어, 알았지?”, 심지어 단호한 불호의 표현에서도 “걔랑은 겸상도 안해!”라고 말하는 밥의 민족에게 이 한 마디에는 많은 뜻이 들어있다. 최근에는 오래 만나지 못한 소중한 사람들과 다시 일상을 보내고 싶다는 소망의 인사도 된 이 말은 단순히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그 한 끼의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는 표현일 것이다.
식사와 시간을 공유하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라포를 형성하고 무의식적으로 친밀함을 더 느낄 수 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일상적인 대화에서 조금 더 깊은 ‘대화’를 해보자는 취지의 콘텐츠가 있다.
<밥친부터 시작> 시리즈는 2018년 7월에 시작해 2019년 2월까지 연재된 콘텐츠이다. 제목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 각 에피소드는 직업, 신념, 가치관, 취향 등이 다른 두 사람이 함께 밥을 먹으며 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25편의 영상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산 베어스팬과 LG 트윈스 팬의 대화를 볼 수도 있고, 양심적병역거부자와 영주권포기병역이행자의 입장을 들어볼 수도 있다. 주제마다 메뉴도 특색있다. 아이돌팬과 경호원 편에서는 연예인 서포트로 많이 제공되는 샌드위치 도시락을, 고등학교를 자퇴한 학생과 30년차 교사 편에서는 식판에 담긴 카레라이스를 먹는다. 에피소드의 등장인물들은 메뉴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를 하다 자기소개도 하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후식을 먹으면서 제작진의 질문에 편하게 대답하는 시간도 가진다.
소재의 폭이 넓은 만큼 생각해볼 주제도 많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된 주제는 ‘이해보다는 존중’으로 표현할 수 있다. 5~9분 정도의 짧은 영상들은 대화를 통해 협의점을 도출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몰랐던 타인을 알아가는 것 그 자체가 목표다. 여러 회차에서 참여자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란 표정을 짓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평소 갖고 있던 편견이나 관계자가 아닌 이상 잘 알 수 없었던 일들을 들을 때 그들은 눈을 빛내고, 고개를 끄덕인다.
영상을 보는 제 3자인 시청자들도 함께 그간의 생각과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소신있게 자신의 삶을 채워가는 청소년을 보며 자퇴는 소위 문제아라 불리는 학생들의 상징이라는 편견을 버린다. 또, 프로게이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학부모단체 대표의 모습에서 대화하는 법을 배운다.
대화는 협상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 하는 거창한 일이 아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행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오고가는 잡담도 대화가 될 수 있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각자의 세상은 넓어질 수 있다. 온라인,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일방적인 발화가 날이 선 요즘, 혐오와 갈등의 발화를 대화로 소화하려면 먼저 마주보고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