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엔 = 임수정 기자] 벚꽃 잎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는 요즘, 나는 학우들이 없는 학교 기숙사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주에는 저녁을 먹고 학교 정문으로 향하던 중 횡단보도 인근에서 교복과 사복을 입은 학생들을 봤다. 전부 합쳐 열댓 명 돼보였다. 다른 사람들처럼 갈 길을 가던 나는 교복을 입은 무리 사이에 단발머리의 아이를 발견했다. 교복 사이에 사복을 입고 있어 눈에 띄었지만 특히 그 아이의 자세가 눈길을 잡았다. 아이는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그 자세가 마치 명치라도 맞은 듯 했다.
'설마 공개적인 장소에서 못된 짓을 하겠어'라고 생각했다. 4차선 도로의 인도 한복판이었고 인근에 지구대가 있었다. 그럼에도 망을 보는듯한 몇 명의 눈치에 주변 사람들은 나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나도 결국 횡단보도를 건넜다. 하지만 학교 정문을 지나 아이들이 시야에서 벗어나자 그 아이가 계속 눈에 밟혔다. 이내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하러 발길을 돌렸다. 횡단보도를 다시 건너니 다행히도 경찰차와 순경 두 명이 와있었다. 안심하고 자연스럽게 한 블록 돌아서 다시 횡단보도로 가던 중 옆으로 구급차가 지나갔다. 단발머리의 아이가 쓰러져 토를 하고 있었다. 상황이 꽤 심각했던 것이다. 순간 내 안일한 판단이 죄스러웠다. 진작 눈치 채 신고했다면 적어도 구급차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때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단발머리 아이의 고통에 비해 미약한 처벌을 받겠지. 그 아이들은 성숙해 보여도 기껏해야 중학생 정도로 보였다. 잘못에 응당한 벌을 받아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확실한 예감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성인 여러 명이 사람을 폭행하면 특수폭행에 해당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지만, 그 아이들은 '소년법' 아래 완화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2017년 인천에서 당시 18세 소년이 8세 여아를 유괴해 살해했다. 심지어 시신을 훼손해 유기까지 했다.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범죄임에도 소년법을 적용받아 20년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부산에서는 여중생들의 가혹한 집단폭행 영상이 전국을 떠들석하게 했다. 지난해 12월엔 경기 구리시에서 초등학생이 살인을 저질렀다. 올해 3월에는 대전에서 10대가 무면허 교통사고를 내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처럼 소년범죄는 갈수록 자극적이고 경악하게 만든다.
◆소년법, 형사처벌 받지 않는 촉법소년의 보호처분 근거.
소년법은 반사회성이 있는 소년을 대상으로 그들의 교화, 재범방지를 위한 법률이다. 소년의 미숙한 정신적 발달과 그들의 교화가능성, 원대한 장래를 고려해 형사법상 특별취급 하는 것이다. 19세 미만자를 소년으로 규정하며 10세 이상 14세 미만이 소년보호사건의 대상이 된다. 구체적으로 14세 이상 19세 미만의 범죄소년은 형사책임능력자다. 이들은 형사처벌이 가능하지만 소년재판으로 분류돼 소년법을 적용받아 완화된 처분을 받는다.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은 형법상 책임 무능력자로 형사처분이 불가능하고 소년법상 보호처분만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10세 미만의 소년은 원칙적으로 형사처벌과 보호처분 모두 불가하다.
소년법은 1958년 법률 제489호로 제정·공포되고 1988년 전문개정 이후 수차례 개정돼왔다. 과거 생활고나 비행 등으로 인한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을 보호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오늘날 소년법은 극악무도한 어린 범죄자를 풀어준다는 오명을 받고 있다. 나아가 소년법 개정 내지 폐지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거에도 소년이 있었듯 우리시대에 소년은 항상 존재해왔다. 어쩌다 소년은 이렇게 무서워졌을까. 소년법은 정말 없어져야 하는 것인가.
언급했듯 소년법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그 중 오해가 있는 듯하다. 먼저 형사무능력자인 '촉법소년'의 개념은 실체법인 형법에서 규정된다. 형법 제9조에 의하면 14세 미만의 자는 처벌할 수 없다. 여기서 파생된 '소년법'은 형법과 달리 절차법에 가깝다. 흔히 '소년법 때문에 소년이 처벌 받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범죄행위와 그에 해당하는 형벌을 명시하는 실체법과 달리, 절차법은 그러한 실체법을 이행하는 절차에 관한 법이다. 즉 '소년의 재판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형법상 처벌을 받지 못하는 촉법소년에 대한 보호처분 절차를 받게 하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소년법을 없앤다고 해서 심각한 소년범죄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2018년 기준 전체 인구 51,635천 명 중 청소년은 약 8,900천 명이다. 그 중 강력범죄자는 일부에 불과하다. 그 일부 때문에 소년법을 없애버리면 진정으로 보호해야 할 소년들을 방치하는 꼴이 된다. 이는 한 집단의 일부가 살인자니 그 집단 전체를 예비살인자로 봐도 무방하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형사처벌도 받지 못하는 촉법소년에 대한 보호처분조차 근거가 사라진다.
◆아이의 잘못은 곧 어른의 잘못, 문제의 원인은 소년이 아닌 달라진 환경이다.
물론 죄를 범하면 그에 맞는 처벌을 내려야 하는 것은 사실이고 소년이라고 해도 처벌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이들에게 성인과 동등한 책임을 지울 순 없다. 외적으로 그들이 성숙해 보일지언정 암묵적으로 그들이 아직 어리숙하다는 것을 다들 인정하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그들에게 처벌만큼 교화가 강조돼야 한다. 처벌을 완화해도 된다는 소리가 아니다. 강력한 처벌만큼 교화가 이뤄져야 한다.
소년이 달라진 것은 확실하다. 운동장에 뛰노는 소년보다 책상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소년이 많다. 마주앉아 웃고 떠들기보다 핸드폰 화면에 갇힌 소년이 더 많다. 도덕에 대한 교육보다 입시와 관련된 교육이 더 중요해졌다. 교육수준 향상, 기술의 발달로 정보를 쉽게 접하게 되며 '소년법으로 강력한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영약한 행동을 하는 소년도 적지 않다. 오늘날 소년들이 무서워진 것은 소년의 근본이 달라졌다기보다 소년을 둘러싼 환경이 달라진 것이다.
과거에도 소년은 있었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 소년이 영악해졌다는 것은 가정과 학교 어딘가 교육의 흠결이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그들의 사회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정과 학교 내 보호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죄가 없다. 그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어른들이 잘못이다. 선천적으로 갖는 기질이 있을지라도 아이들은 보고 배우며 자라기에 그들 앞에 있는 본보기가 중요하다. 어른들은 탈선한 아이들에게 바른 길을 안내하고 그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정말 소년법을 폐지해야 하는가? 폐지한다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행위만이 반복될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소년의 범죄행위보다 그렇게 된 배경을 먼저 집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소년법 제1조를 읽어보길 바란다. 소년법은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