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엔/권예인 기자] 현재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수준이 낮은 이유를 알기 위해선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디지털 성범죄는 ‘젠더 기반 디지털 접목 범죄’다. 성범죄의 해결책을 기술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은 1970년대 이후이다. 성의 개념은 태초부터 존재했지만, 성범죄에 대한 개념은 그에 비해 한참 늦게 발전했다. 국내에서 디지털 성폭력의 개념은 2015년 처음 사용됐다. 디지털 기기의 등장과 기술의 발전이 최근 비약적으로 증가해 이에 따라 상용된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 기술의 발전 속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젠더 범죄에 대한 이해의 속도에 맞춰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성범죄와 관련된 제32장에 ‘정조에 관한 죄’를 명시했다. 이는 피해자에 책임을 전가하는 인식에 일조했다. 1995년에야 개정을 통해 ‘강간과 추행의 죄’로 명칭이 바뀌었다. 사회에서 명시한 여성 비하는 여성에 대해 위협적이고 성범죄에 관대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언론 또한 ‘리벤지 포르노’와 같은 자극적인 단어를 이슈를 끌기 위해 사용하지만, 이는 범죄 자체의 내용을 정확히 기술하지 못한다.
이러한 인식에 디지털 기술이 접목했다. 올해 발생한 디지털 범죄 ‘n번방’ 사건에서도 그랬다. 가해자들은 가상화폐를 사용해 자금을 조달하고, 해외 서버를 이용해 추적을 피했다. 이에 따른 구속 실패는 범죄의 가능성을 증가시켰다. 잡을 수 없는 기술의 범죄, 심각하지 않은 인식의 범죄는 형량을 낮추고 범죄율을 높였다. 불법 촬영이 7년 새 4배 급증하는 동안, 구속은 고작 2%대인 상황이라고 한다. 반대로 구속 2%대인 상황이 불법 촬영의 급증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인식과 제도의 개혁을 선행해야 한다. 올해 초, n번방 사건과 관련하여 정부는 ‘반드시 잡는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합리성을 고려했을 때, 인식과 제도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현재와 같이 처벌 수위가 낮으면 범죄의 가능성은 증가한다. 현재 형법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폭력 피해가 현실 공간에서의 폭력 피해에 못지않다는 점에 대한 이해 부족, 피해에 대한 민감성 내지 감수성과 존중의 태도 부재, 그리고 적발과 수사 기법의 부실이 문제로 지적된다.
법적 대책이 인식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형법 개정으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 인식 개선에 더불어 가상화폐와 해외서버 같은 범죄적 도구를 막기 위한 기술적 협조가 필요하다. 선례로 유럽 평의회는 2011년 여성대상폭력 및 가정폭력 방지 및 근절 협약을 제시했다. 유럽연합은 디지털 성범죄를 젠더기반폭력(gender-based violence)로서 정립하는 데서 출발하여, 실태조사와 함께 종합적 정책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높은 처벌 수위가 당연하게 느껴지는 사회에서야 디지털 성범죄는 감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