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엔 / 윤지예 기자] 매년 2월 14일은 발렌타인데이로, 많은 청소년 및 대학생들이 좋아하는 친구나 연인 사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로 유명하다. 3세기 로마시대 당시 결혼은 황제의 허락으로 이뤄졌는데, 그리스도교 사제인 밸런티누스가 사랑하는 젊은이들을 황제 허락 없이 결혼을 시켜준 죄로 목숨을 잃게 된 사건이 있었다. 그가 순교한 날이 축일로 정해졌는데, 그게 ‘밸런타인데이’의 유래라는 말이 있다. 흔히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며 마음을 전하는 ‘발런타인데이’로 2월 14일이 유명하지만, 그날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기도 하다.

안중근 의사는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중 한 명으로, 만주 하얼빈에서 한반도 침략에 힘썼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인물이다. 그는 1905년 11월 을사조약의 체결로 조선이 위태로워지자, 나라를 구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에 건너가 의병 운동을 하였다. 그러던 중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를 사찰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유동하, 우덕순, 조소던 등의 인물과 함께 거사를 도모했다.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토부미를 총탄 3발로 사살하는데 성공했지만 끝내 붙잡혔다.
그는 하얼빈의 일본 영사관을 거쳐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 송치되어, 6번의 재판을 받았다. 그는 재판 도중 명셩황후를 시해한 죄, 한국 황제를 폐위시킨 죄, 을미늑약과 정미조약을 강제 체결한 죄 등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 15가지를 읊으며 자신은 대한제국의 의병 창모 중장의 자격으로 싸우다 포로가 된 것이라고 당당히 주장했다. 그러나 공판 끝에 1910년 2월 14일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같은 해 3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32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사형 집행 전 “자신의 뼈를 하얼빈 공원에 묻었다가 조선이 국권을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겨달라”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이는 일본 측에 의해 거절당했고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올해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지 111주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101주년이 되는 해임에 더불어, 다가오는 2020년 2월 14일은 안중근 의사의 사형 집행일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2월 14일을 발런타인데이로만 기억하지 않고, 안중근 의사의 사형 집행일이었다는 것과 그가 이뤄낸 일들을 기억하기를 바란다.